::: 천주교 대구대교구 인동성당 :::

실로 8개월 만에 글을 올린다. 내일 내일 하다가 보니 이렇게 되었다. 20일전쯤 장영일 신부로부터 교구청 부임 후 첫 휴가를 내 자전거 여행을 계획하니 같이 가자는 연락이 왔다. 장신부는 스페인 산티아고 2개월, 네팔 1달 및 국내에서 여러 번 장거리 여행을 했으니 한 번도 장거리 여행을 해보지 못한 나는 생각도 없이 장신부의 장거리 여행 노하우를 배우고 싶어 그렇게 하자고 동의했다. 여행 준비를 잘해야 하지만 사목 제단체장 연수를 준비하느라 시간을 낼 수가 없어 모든 것을 장신부에게 의존했다. 막상 출발하려니 준비가 제대로 안되어서 장신부한테 겨울 바지를 하나 얻고, 다른 신부에게서 신발 덮개를 빌려 출발했다. 아마 그냥 갔더라면 추위에 엄청 고생했을 것이다.

연수가 끝나고 피곤하지만 차에 자전거를 싣고 대구로 갔다. 모든 매스컴에서 강추위를 예고했지만, 우리의 계획을 뒤로 할 수가 없었다. 교구청에서 만나 고속버스에 자전거를 싣고 전주로, 전주에서 부안으로 갔다. 장신부는 따뜻한 캔 커피를 하나 준비해서 기사 아저씨에게 드리면서 "자전거 여행자인데 자전거를 짐칸에 실어주세요."라고 청하니 기사 아저씨가 친절하게 도와주었다. 조그마한 선물에 서로가 감사하는 마음이다.

부안에서 유명하다는 '당산마루' 한정식 집에서 저녁을 먹고, 아침 먹거리를 구입해서 모텔에서 하루 밤을 자고, 5시 40분에 기상해서 준비해간 원두를 갈아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정신을 차리면서 라면으로 아침식사를 하고 7시30분에 출발했다. 차가운 날씨지만 여행하기엔 별 무리가 없었다. 가능하면 국도보다는 지방도를 이용해서 변산반도에 있는 내소사를 거쳐, 선운사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120킬로쯤 달렸다. 호텔에 있는 사우나에서 한껏 피로를 풀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역시 5시 40분에 기상해서 커피 마시고 7시 반에 출발했다. 어제보다 더 추운 날씨지만 그래도 계속 달렸다. 110킬로쯤 달려 함평에 도착하니 마침 국향대전 전시회가 있었다. 1년생 국화지만 마치 함평 군민들이 고목처럼 키워 전시회를 하고 있었다. 처음 보는 국화가 신기하기만 하였다. 함평성당 사무장의 소개로 신자가 운영하는 식당을 찾아 생고기와 산 낙지로 저녁을 맛있게 먹고 잠자리에 들었다. 하필 목욕탕이 휴일이라 간단한 샤워만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 8시에 출발했다. 함평에서 목포까지는 가까운 거리여서 가능한 원거리를 택해 목포로 갔다. 목포에 도착하니 오후 1시, 20분 후 목포에서 광주, 광주에서 대구로 왔다. 짧은 여정이었지만 장거리 여행의 노하우를 많이 배운, 추웠지만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겼다는 기쁨을 느낀 아름다운 여행이었다. 덧붙여 여행에서 만난 재미있는 두 사람과 무안 국제공항 이야기를 계속할까 한다.

첫 사람 이야기 : 부안에서 출발해서 열시 반쯤 배가 고파, 바닷가 언덕위에 있는 모항전망대 포장마차에서 죽을 먹기 위해 들어갔다. 장신부가 먼저 들어가고 난 조금 있다가 들어가 자리에 앉으니 깍두기 머리를 한, 30대 후반의 한 남자가 소라 회를 한 접시 가져다주면서 먹어 보란다. 난 순간 이 친구가 우리에게 시비를 거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장신부는 그 친구가 종업원이고 내가 밖에서 그 회를 주문한 것으로 생각했단다. 배가 고파 허겁지겁 먹는데 그 친구가 "연세 드신 분들이 이 추위에 자전거 여행을 하니 대단해서 소라 회를 드립니다."라고 말한다. 우린 고마워서 기념사진이라도 찍자고 하니, 자기는 주먹 꽤나 쓰는 사람인데 혹시 얼굴이 알려지면 곤란하다면서 극구 사양했다. 그런데 재미난 사실은 그 친구가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계산을 하는 것이 아닌가.

두 번째 사람 이야기 : 차량 통행이 잦아 가능하면 조용한 지방도나 마을 도로를 찾아 다녔다. 마침 삼거리에서 어느 길을 택할 것인가 고심 중에 있는데, 승용차가 한 대 오고 있어 차를 세웠다. 그런데 번호판을 보니 '대구 허 0000" 아닌가! "길을 물으려 했는데, 대구 차인걸 보니 이곳 지리를 잘 모르실 것 같네요.'라고 했더니, 그 사람이 "이 차는 대포차이고, 난 여기 사람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길을 물으니, 길을 가르쳐 주면서 자기가 앞장서 갈 테니 따라 오란다. 아무리 그렇지만 자전거로 어떻게 차를 따라 갈 수가 있나! 그런데 그 사람은 천천히 가다가는 서고, 가다가는 서고하면서 우리를 안내 해 주는 것이 아닌가. 세상에 악인은 없는가 보다. 불량스럽게 보였던 그 두 사람은 하느님이 우리에게 보낸 천사였던가!

세 번째 무안국제공항 이야기 : 목포로 가는 도중 무안국제공항으로 가는 고속도로 같은 고가도로를 만나게 되어 분명 차들이 많이 통행하고 있어 위험 할 것 같아서 옛길을 찾기 위해 마을로 돌아와 사람들에게 옛길을 물었지만, 옛길이 있다는 사람과 없다는 사람의 이야기로 헷갈렸다. 그래서 하는 수 없어 위험하지만 고가도로를 타고 가자고 합의를 하고 그 길로 올라섰더니 왕복 4차선 도로가 쭉 뻗어 있었다. 그런데 양쪽으로 다니는 차가 한대도 안 보인다. '아차! 맞아 세계에서 가장 실패한 공항이 무안국제 공항이 아니던가!' 국제선 한편도 없는 공항, 국내선도 하루에 한두 편 당연히 차들이 다니지 않는 것이다. 무안국제공항은 전두환 시절에 선심성 공약의 건물로 계획 되었고, 김영삼 시절에 완공 되었다는 것이다. 국민들의 혈세로 멋있게, 장엄하게 지어 놓은 공항청사와 활주로가 이렇게 무용지물이라니, 아니 유지 보수에 또 막대한 예산을 써야 하다니 정치와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자 하지만, 정말 뿔이 난다. 낭비 없는 국가 예산, 국민 안녕 이룩한다!

변산반도 바닷가, 깍두기 머리 친구를 만난 포장마차, 선운사 계곡, 함평 “국향대전”전시회 출품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