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주교 대구대교구 인동성당 :::

잠자리가 바뀐 탓인지 서너번씩 잠을 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고나면 몸이 가뿐하고, 상쾌한 느낌이 든다. 아마도 신선한 공기 탓이 아닌가 생각한다. 지난 밤도 12시가 넘어 잠자리에 들었는데, 숙면을 못 취하고, 몇번인가 일어났다 잠들다 하다 눈을 뜨니 6시가 다 되어간다. 일어났다 다시 잠자리에 들었는데, 갑자기 정신이 맑아 진다. 일어나자, 움직이자는 생각이 들었다.

일어나 기도하고 자전거를 탈까 생각하다, 오늘은 가볍게 성당 마당이나 오르락 내리락 하자는 생각에 반바지 차림에 문을 열고 나가니, 삽살이 다롱이가 반긴다. 같이 산보를 하다보니 다롱이가 좀 더 멀리 나가고 싶어하는 몸짓을 한다. 그래 동네 한 바퀴를 돌자는 생각에 밖으로 나왔다. 지난 번에 동네 오른 쪽을 다롱이랑 같이 돌았는데, 오늘은 인동중학교 쪽으로 가보자는 생각으로 나섰다.

학교 뒷 쪽으로 길이 있어 올라 갔더니 등산길이란 표지가 보인다. 동네 아저씨 처럼 산보차림인데 그냥 돌아 갈까 생각하다 조그만 올라 가볼량으로 올라 갔드니, 다롱이가 좋아 미치는 몸짓을 한다. 사실 다롱이는 경산 자인성당에 있을 때, 생후 2개월 만에 나에게 온 놈인데, 산악자전거를 시작하면서 같이 산을 자주 오르락 내리락 하였다. 그러나 후에 대구 동인성당에 발령 받고 시내 한 복판에 갇여 꼼작 못하고 4년의 세월을 보냈는데, 4년이 지난 후에 모처럼 산에 올라오니 신이 나는 모양이다. 그래도 멀리 가지 않고, 5미터 전후방에 따라 다니니까 걱정없이 산에 올랐다. 그래도 혹시 만나는 등산객에게 피해를 줄까 사람이 나타나면 미리 다롱이를 불러 옆에 오게하고, 지나는 분들에게 인사를 하면서 미안하다고 말씀을 드렸다. 그리고 이 개는 삽살개라 좋은 놈이라고 말씀드렸다. 어떤 분들은 참 멋있는 놈이라고 칭찬하신 분도 계시고, 어떤 분들은 조금 불편해 하는 표정을 짓기도 했다.

등산길이라는 표지에서 조금 올라가니 정상까지 3.1키로 라는 표지판이 나왔다. 정상이란 글자를 보자 순간적으로 저기까지 목표다 하는 생각이 떠 올랐다. 모두들 등산복 차림에 산을 오르고 있고, 손수건 하나 준비하지 않고서 올라 간다는 것이 무모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왕 내친김에 가보자는 생각이 앞섰다. 단숨에 쉬지 않고 정상 가까이에 이르니, 지난 번 자전거로 내려 올때의 천룡사로 가는 갈림길이 보인다. 여기서 정상이 멀지 않았다는 생각에 신명이 났다. 조금 가니 스텐이레스로 만든 계단이 나왔다.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따라왔던 다롱이가 계단 앞에서 멈추어 서서는 올라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아무리 꼬셔도 앞 다리 하나만 계단에 걸쳐 놓고, 겁 먹은 표정으로 오를 생각을 하지않는다. 다롱이가 친환경적인 개(?)라 그런가 험한 산길은 잘 오르는데, 왜 인간이 만든 계단을 싫어 하는가?라는 생각에 골몰하고 있을 때, 어떤 아저씨가 내려 오면서, 자기 개도 여기까지 와서는 계단을 싫어해서 그냥 돌아 갔단다. 다롱이를 위해 그냥 돌아 갈까 생각하다, 그래도 사나이가 마음을 먹었으면 끝을 내야지 하는 생각에 다른 길을 찾아 돌아서서 그 계단 위로 올라 갔다.

조금 더 가니 이 번엔 아주 긴 계단이 나온다. 이 번에도 다롱이가 거부를 한다. 할 수 없이 또 우회 길을 찾아 나섰다. 이 번엔 그리 간단하지 않다. 한참을 가도 정상으로 올라 갈 길을 찾을 수가 없다. 얼마를 가니 약수터 자리가 나왔다. 주변에 바가지도 있고 해서 우물 속을 보니 물이 거의 없다. 그래도 힘들어하는 다롱이를위해 바가지로 억지로 물 한바가지를 떳다. 흙탕물이었지만 다롱이는 신나게 먹었다. 계속 갈까 하다 길도 올라 가는 길이 아니라 내려 가는 길처럼 보이고, 다롱이도 힘들어 하고, 시간도 꽤 지나 어쩔 수 없이 정상을 앞두고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다시 돌아 오늘 길에 다롱이가 두 번째 거부 했던 긴 계단을 만났다. 그냥 올까 하다 그래도 오기(?)로 다시 계단을 올랐다. 이 번엔 힘이들어 정신이 없던지 다롱이가 계단 첫번째 부분을 그냥 올라왔다. 이 계단 길로 가면 정상이 얼마 되지 않으니까, 다롱이를 어떻게든 꼬셔 정상 가자는 생각이 다시 솟구쳤다. 그런데 두 번째 부분에서 또 거부한다. 한참을 꼬시고, 달래고 억지로 두 번째 부분도 올랐다. 그런데 너무나 무서워 하는 표정에 조금 미안하다. 야! 그래도 정상이 저긴데, 가자! 하고 세 번째 부분을 올랐다. 그러나 다롱인 꼼짝도 않는다. 그리고 원망 어린 눈초리로 나를 쳐다 본다.

내 욕심때문에 다롱이를 힘들게 할 것인가? 하는 생각에 그냥 내려 왔다. 내 사목적 욕심 때문에 신자들을 힘들게 할 것인가? 하는 생각에 까지 미쳤다. 양보할 줄 아는 지혜도 키우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내려 오면서 다음에 오면 어떻게든 다롱이를 꼬셔 정상까지 가야지 하는 생각을 했다. 욕심을 버리기가 이렇게 어려운가? 어떻게해야 해탈을 할까? 나의 숙제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