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그리스도인은 신비가가 되거나,
아니면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20세기의 신학자 칼 라너가 남긴 유명한 말입니다.
또 칼 라너는 “일상을 살아가며 신비와 만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영적인 하느님 체험의 본질이며,
이것 없이 외적인 제도와 형식,
소시민적인 자기만족의 방편으로서의 종교 생활만이 남을 때
그것은 더 이상 그리스도인의 삶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흔히 ‘신비가’라고 하면,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
십자가의 성 요한 같은 분을 떠올리기 쉬우나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칼 라너는 평범한 사람들의 세속적이고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하느님의 부름을 발견하고 응답하며,
신비에 다가설 수 있다고 했습니다.
사실 하느님은 놀라운 방법으로 우리의 삶에 개입하고자 하십니다.
하느님의 개입을 알아차리고 응답할 때 신비에 다가설 수 있습니다.
신비가가 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어떤 방법으로든 기도의 끈을 놓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곧 칼 라너가 말한 미래의 그리스도인인 우리에게
기도하는 삶을 산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 되었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일하는 데에 씁니다.
또 더 큰 성공과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하는
물질주의적 세속적 가치관이 우리 신앙의 가치를 잠식하고 있습니다.
무늬만 신자가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 제대로 살기 위해
더욱 기도가 필요한 시대이지요.
예수님께서도 기도하셨는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기도가 얼마나 더 절실히 필요하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달라는
제자의 요청에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십니다.
그리고 이어서 비유 하나를 들면서, 끊임없이 청하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더 이상 하느님께 청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오늘날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께서 끊임없이
우리의 삶에 개입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감각을 잃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가령, 어떤 일이 잘 풀리고 해결되었을 때,
하느님의 이끄심과 섭리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우연히 그렇게 맞아떨어진 거라고 여기는 겁니다.
저는 이번 중고등부 여름 신앙학교를 준비하며
장소부터 프로그램까지 하느님의 개입을 강하게 느꼈습니다.
또한 그러한 하느님께서 교사들에게 열정과 아이디어를 주셨다고 믿습니다.
신앙학교 장소로 시원한 봉화로 가야겠다고 생각을 했을 때,
곧바로 어느 교우분이 와서는
‘봉화에 촌집을 리모델링 했는데, 필요하시면 쓰세요.’라고 말한 것이
그냥 우연이라고 해야 할까요?
기차를 탄다는 생각도 못 하고 세평 하늘길 답사를 갔는데,
양원역에 하루에 두어 대 정차하는 백두대간 협곡열차가
막 들어오는 것을 본 게 그냥 운이 좋아서일까요?
우리가 기차를 탔던 다음날부터 8월까지
협곡열차 운행이 중단되는데,
이 모든 것이 그저 운이 좋아서, 일이 잘 풀린 거라고 봐야 할까요?
신앙 감각이 약해져 있으면,
필요한 모든 것들을 얻기 위해서 하느님을 찾을 생각조차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느님께 청하지 않습니다.
무릎을 꿇고 기도해봐야 소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프면 의사를 만나 치료를 받아야지, 기도는 할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물론 의사에게 가서 치료받아야 합니다만,
기도를 배제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에게도 일용한 양식을 얻는 것은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찾는 것이고,
그 아버지께 일용할 양식을 청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고, 하느님이 나의 삶에서 뒷전에 밀려나 있다면,
만약 청한다고 해도 기도의 효력은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병자를 치유하시면서
언제나 믿음을 요구하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루카 11,9)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이 단순한 말씀을 믿으십니까?
하느님께서 권능을 가지시고 우리의 삶에 직접 개입하신다는 것을 믿습니까?
믿음이 있어야 청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있어야 하느님을 찾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믿음은 항구함으로 드러납니다.
“그 사람이 벗이라는 이유 때문에 일어나서 빵을 주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가 줄곧 졸라 대면 마침내 일어나서 그에게 필요한 만큼 다 줄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믿음으로 청하는 자녀들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이라 믿고,
귀찮을 만큼 끈질기게 청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기도가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하나가 필요한데, 그것은 바로 ‘용서’입니다.
“저희에게 잘못한 모든 이를 저희도 용서하오니 저희의 죄를 용서하시고”
20세기의 인도의 영성가 앤소니 드 멜로 신부는
‘많은 사람들의 기도에 힘이 없는 큰 이유는
마음속에 원한을 키우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네가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고 하다가,
거기에서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예물을 바쳐라.”(마태 5,23-24)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용서하지 않는다면,
또 우리가 용서를 청하지 않은 채 원한 상태에 있다면,
예수님은 우리의 기도를 받아들여 주실 리가 없습니다.
우리를 모른다고 하실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2독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잘못을 용서해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불리한 조항들을 담은 우리의 빚 문서를 지워 버리시고,
그것을 십자가에 못 박아 우리 가운데에서 없애 버리셨습니다.”(콜로 2,14)
그러니 우리도 용서해야 합니다.
용서해야지 우리도 주님께 용서받을 수 있고,
주님과 친밀한 관계에 놓이게 됩니다.
오늘 1독서의 아브라함에게서 ‘믿음과 용서’라는
기도의 두 가지 요소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항구한 믿음을 가지고 죄악의 도시인
소돔과 고모라를 위해 주님께 계속해서 용서를 청했지 않습니까?
오늘 복음의 마지막에서 주님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고 말씀하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성령을 받으라고 하시면서, 용서에 대한 권한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진정, 우선적으로 청해야 하는 것은 성령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하느님의 섭리와
우리 인생에 개입하시는 그분의 손길을 느낄 수 있게 해 주십니다.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선물로 주십니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우리가 마음속에 품고 있는 원한을
내려놓고 용서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형제 여러분,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으로 끈질기게 아버지께 청합시다.
성령께서 나약한 우리를 도와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올바른 방식으로 기도할 줄 모르지만,
성령께서 몸소 말로 다할 수 없이 탄식하시며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해 주십니다.”(로마 8,26)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루카 11,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