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은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부르십니다.
주님이 우리 이름을 부르신다는 것은
바로 우리 존재 자체를 부르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조건과 장단점, 부족한 점과 한계,
성향과 어두운 과거까지도 다 아시고 부르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세례를 통해 구원받은 존재로 부르심을 받았고,
하느님의 자녀로 그리고
주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심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부르시면서 요구하시는 게 있는데,
‘나를 따라오너라’하고 말씀하셨지요.
주님의 뒤를 따라가는 것,
그분이 어디를 가시든지 믿고 따라가는 것,
그것이 부르심 받은 제자의 삶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따라
이 세상에서 순례자로 살아갑니다.
천국 본향을 향하는 순례자말입니다.
초대 교회의 문헌인 ‘디오그네투스에게 보낸 편지’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그들은 세상에서 이방인처럼 살고 있다.
모든 타향이 그들에게는 고향이며,
모든 고향은 그들에게 타향이 된다.”
루카는 9장 51절부터 무려 10개의 장에 걸쳐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길’에서 일어난 일을 보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 예루살렘은 십자가의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곳입니다.
이 길에서 전하는 주님의 가르침은
죽음과 부활에 직면한 가르침입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향하시면서
다른 제자 일흔두 명을 지명하시어,
몸소 가시려는 모든 고을과 고장으로 당신에 앞서 둘씩 보내십니다.
그들이 선포해야 하는 것은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소식입니다.
이 소식은 기쁜 소식이면서 동시에 긴급한 소식입니다.
이 소식을 듣는 이는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준비하는 삶으로
즉시 응답해야 합니다.
언제까지나 기다릴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발에 묻은 먼지까지 털어 버리고 미련 없이 떠나야 합니다.
그런데 이 일흔두 명의 제자들만이 아니라,
오늘날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 모두가 어떤 식으로든
이러한 삶으로 부르심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제자로서 세상에 파견받았고,
세상 순례자의 삶을 끝마치면 하느님 나라에서
주님을 뵙고 보고드리게 되겠지요?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내시며 가장 먼저,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하고 이르십니다.
우리처럼 일할 주님의 일꾼을 보내 주십사고 하느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의 일에 봉사할 일꾼이 필요합니다.
또한 더 많은 이들이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교회 공동체에 들어올 수 있게 우리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하느님의 도우심이 아니면 기도의 힘이 아니고서는
우리의 힘으로 해낼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우리의 발걸음에 첫 번째는 기도입니다.
제자들의 선포 활동은 길 위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들은 전형적인 순례자의 모습입니다.
제자들은 길을 떠날 때 아무것도,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아야 합니다.
재물이 많고 물질적으로 풍요로우면, 간절함과 절실함이 사라집니다.
아무래도 하느님을 덜 찾게 되겠죠. 가진 것이 많으면,
하느님께 의지하기보다는 물질적인 것에 의존하기 쉽습니다.
판관 기드온이 미디안족을 물리칠 때였습니다.
하느님은 기드온에게 그가 거느린 군사들이 너무 많아,
이스라엘이 하느님을 제쳐두고 자신들의 손으로
승리하였다고 자랑할까봐 염려된다고 하셨지요.
이에 기드온이 하느님의 지시에 따르니 3만 2천 명의 군사 가운데
많이 돌려보내고 겨우 3백 명만 남게 됩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그 적은 수의 군사로도
미디안족을 쳐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처럼 하느님의 일을 하는데 많은 것이 필요하진 않습니다.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의 기도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하느님을 가진 사람은 아무런 아쉬움 없고 하느님만으로 넉넉하도다.”
이 기도로 만든 ‘아무것도 너를’이라는 성가도 있습니다.
“하느님을 소유한 사람은 모든 것을 소유한 것이니
하느님만으로 만족하도다”
제자들은 길을 떠나 고을과 마을을 돌고 복음을 선포하며
예수님의 명령을 따릅니다.
그들은 환대받아 마땅하나, 이집 저집 옮겨 다니지 않되,
영영 눌러앉으면 안 되고, 끊임없이 길을 나아가야 합니다.
조선의 초대교구장이신 브뤼기에르 주교님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영원히 머물 것처럼, 그러나 곧 떠날 것처럼”.
그리스도인은 순례자이니까요.
제자들은 그곳 병자들을 고쳐 주며,
‘하느님의 나라가 여러분에게 가까이 왔습니다.’하고 선포했습니다.
어떤 모습으로 하느님의 나라를 전했을까요?
그것은 그 집에 들어갈 때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하는
인사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평화를 받을만한 사람이든
그렇지 않든 중요치 않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첫 번째 말은
언제나 평화를 빌어주는 것이었습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평화가 깃들이는 곳에서
시작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제 사목 실습을 마치고,
일흔두 제자가 기뻐하며 돌아와 예수님께 보고합니다.
기쁨으로 들뜬 제자들의 모습이 상상이 갑니다.
그들은 ‘가거라’하시는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용감하게 복음을 전하러 갔고, 박해도 받았겠지만,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예수님을 따라 그리스도인으로 살면 기쁩니다.
신앙생활이 기쁩니까?
여러분 모두가 주님의 제자로 충실히 사는 데에서 오는
기쁨이 충만하기를 빕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자기들이 무엇을 했는지
자신의 업적을 드러내 보이거나,
성실히 살아냈다는 것을 입증하거나 증명하지 않았습니다.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도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당신을 바치셨고,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사도 바오로는 십자가에서 하느님의 조건 없는 사랑을 봤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내 쪽에서 보면 세상이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말합니다.
세상의 잣대와 기존의 가치관이
십자가에서 폐기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오로는 이제 더 이상 자신의 업적을,
율법에 충실함을 하느님께 보상받으리라는 기대로 살지 않게 되었습니다.
오로지 자신을 위해 당신을 바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랑하며,
그분에 대한 사랑과 감사함과 믿음으로 살아갔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한계와 약점
그리고 어두운 과거까지 다 아시고 부르셨습니다.
우리는 그저 부르심 받은 나 자신으로서,
기쁘게 복음을 전하며 살아가면 됩니다.
언제나 기도로 주님의 도움을 청하고,
하느님만을 소유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우리의 이름이 기록된 천국 본향을 향하는 순례자라는 것을 기억합시다.
또한 공동체 안에서 평화에 도움이 되는 일에
힘을 쏟으며 살아간다면
주님은 우리의 삶에 열매를 맺게 해 주시고,
기쁨이 충만한 삶으로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