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교는 흔히 ‘사랑의 종교’라고 불립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음을 앞두시고 최후의 만찬에서
당신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새로운 계명이 맞습니까?
우리는 이미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과
둘째가는 계명을 알고 있지 않습니까?
이 계명들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구약의 율법이 말하는 ‘이웃 사랑’은
자기 사랑이 중심에 있습니다.
이웃을 나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니까
나를 사랑하지 못하면 이웃 사랑은, 볼품없게 되겠죠.
나를 사랑하는 만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니까요.
그러나 새로운 계명의 사랑의 근거는 예수님에게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어떻습니까? 같은 사랑이지만 차원이 다르죠?
그리고 구약에서는 온 힘을 다해서 하느님을 사랑해야 했다면,
새로운 계명에서는 하느님께서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먼저 찾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지?’
새 계명을 잘 지키기 위해서 예수님에게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런데 서로 사랑하라고 명하신 계명에서 ‘사랑’은
에로스도 아니고 필리오도 아니고, 아가페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서로 ‘아가페’하라고 명하십니다.
아가페는 상대를 존경하고,
그에게 생명을 누리게끔 해 주는 헌신적인 사랑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여러분들은 자녀를 아가페 하십니까?
배우자, 부모를 아가페 하십니까?
사랑하는 가족도 아가페하기 어려운데
형제자매들을 아가페 하기란 얼마나 더 어렵겠습니까?
아주 예전에 부모님께서 ME(marriage encounter, 부부 대상 교육프로그램)를 다녀오신 다음,
어머니께서 하셨던 말씀이 아직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남편을 많이 사랑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당신의 욕심이었다고 했습니다.
남편이라면, 아버지라면 마땅히 이렇게 해야 한다는
어머니 나름의 틀을 만들어 두고,
아버지를 그 틀 안으로 밀어 넣으려고 애를 썼다는 겁니다.
사랑한다면 그 사람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고 봐야 하는 건데,
그렇게 하지를 못했다고 고백하셨습니다.
우리의 사랑이 아가페하지 못하면,
‘나는 이만큼 너를 사랑하는데, 너는 왜 나를 사랑하지 못하니?’
‘나를 사랑한다면서 왜 이런 것도 못해주니?’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나 중심적입니다.
그래서 상대에게 요구하고 닦달하거나,
그게 뜻대로 안 되면 다투기도 하고 실망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예수님께서 주신 새 계명을 실천할 수 있을까요?
체코의 영성가 ‘토마스 할리크’ 신부님은
‘신이 없는 세상’이라는 책에서 인간의 삶을
‘깊이에 대해 열려 있는 삶’과
‘겉으로 드러난 피상적인 삶’으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여기에서 힌트를 얻을까 합니다.
깊이 들어가지 못하는 피상적인 삶은 끊임없이 소비하게끔 합니다.
불행히도 사람 사이의 관계 맺기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끊임없이 필요한 무언가를 구매하듯이,
타인들을 유용성에 따라 평가받는
어떤 상품인 것처럼 대하며 관계를 맺습니다.
쉽게 말해, 내게 필요하고 득이 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죠.
이해득실을 따지는 만남엔 나 중심적인 사랑이 있을 뿐입니다.
상대가 내 마음에 흡족해야 사랑할 수 있어요.
마음에 들지 않으면 사랑 못 하는 겁니다.
이러한 표면적인 삶은 기쁨의 대체물로
끊임없는 쾌락과 재미를 찾습니다.
의미나 철학적 성찰이나 삶의 중요한 가치들은 중요치 않습니다.
재미있냐, 재미없냐 그게 중요할 따름이죠.
이 재미에서 저 재미로,
이 물건에서 저 물건으로 떠도는 일로 이루어집니다.
그런 삶은 깊이 머무르는 관조적 삶과 반대입니다.
이러한 삶은 결국 ‘군중 속의 고독’을 낳습니다.
그러니 깊이에 대해 열려 있는 삶을 살아야지
아가페 할 수 있겠지요?
사도 바오로는 인간 실존의 이 두 가지 양식을
이미 ‘영과 육’이란 은유적 표현을 사용하여 설명했습니다.(로마 8장)
‘영에 따라 사는 사람’은 깊이 있는 삶을 추구하고,
‘육에 따라 사는 사람’은 피상적인 삶을 살게 됩니다.
하느님을 만나고자 한다면,
참된 기쁨을 살기 위해서는,
아가페 하기 위해서는?
‘영’에 따라 살아야 합니다.
깊이에 대해 열려 있는 삶,
깊은 곳으로 가는 삶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영이 여러분 안에 사시기만 하면,
여러분은 육 안에 있지 않고 성령 안에 있게 됩니다.”(로마 8,9)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붑니다.
영에서 태어난 이도 이와 같습니다.”(요한 3,8 참조)
영에 따라 사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자유로운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성령은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성령은 우리 자신을 넘어 초월을 바라보게 합니다.
그리스도교에서 초월의 최고 형태는 사랑입니다.
사랑하기 위해서는 이기심과 자아도취를 넘어서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아가페)은 전적으로 타자를 지향합니다.
따라서 자신을 위해서 살지 않고 타인에게 열려 있는 사람,
사랑 안에서 사는 사람은 본래의 의미에서 자유를 성취합니다.
곧, 깊은 마음으로 산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의 마지막 때에
강조가 되는 것은 ‘영광’입니다.
당신이 영광을 받으시는 때란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의 때를 가리키지요.
십자가에서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높이 들어 올려지시고, 하느님의 영광이 온 세상에 빛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서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는 수난에서
그분은 영광스럽게 빛나시고
그분의 사랑을 바라보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에게서 깊이 있는 삶,
최고의 사랑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오로는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누리려면
그분과 함께 고난을 받아야 한다.”(로마 8,17)고 말합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위한 힘든 노력은 계속할 가치가 있습니다.
1독서는 바오로와 바르나바의 1차 선교여행의 결론을 다루고 있습니다.
4년여간 선교여행 동안 그들은 돌에 맞아 죽을 뻔한 적도 있었고,
박해받으며 쫓겨나고 숱한 고생을 했습니다.
하지만 돌아와서 하느님께서 자기들과 함께해 주신 모든 일에 대해서,
그리고 다른 민족들에게 믿음의 문을 열어 주신 것을 보고하였습니다.
주님과 함께 영광을 누리기 위해
고난을 달게, 기쁘게 받아들인 제자들의 모습이 그려지지요?
하느님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
그분의 사랑에 대한 확신이 있는 사람은
어떠한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습니다.
고난 속에서도 영광을 바라보는 눈이 있습니다.
오늘 2독서 요한묵시록의 말씀,
“하느님 친히 그들의 하느님으로서 그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다시는 죽음이 없고
다시는 슬픔도 울부짖음도 괴로움도 없을 것이다.....
보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든다.”
바오로 사도는 묵시록의 이 말씀이
먼 미래에 저세상에서만 일어날 일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봤습니다.
세례 받은 이에게는 그 새 삶이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세례성사의 선물로 하느님의 영을 통해
이미 ‘새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2코린 5,17)
유다는 새 계명을 듣지 못했습니다.
새것이 된 우리, 새롭게 태어난 우리에게
예수님의 새로운 계명이 선물로 주어집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기도하는 삶으로 하느님 안에 깊어 들어갑시다.
하느님 영을 따라 살아갈 때, 우리의 사랑은 성장합니다.
성령께서 우리가 서로 아가페 할 수 있게, 사랑할 수 있게 도와주십니다.
우리를 진정 자유롭게 하는 주님의 사랑에 감사드리고,
서로 사랑하며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은총을 구합시다.
